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유해성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유통업체 전체로 칼을 뽑아 들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를 시작으로, 문제의 원료물질 공급업체인 SK케미칼, 옥시를 본따 만든 제품을 판매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미디어세상에서는 여론이 집중된 옥시의 그늘 뒤에 숨어 있는 다른 주요 가해 업체들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미디어세상=양은미 기자]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은 지난 10일 SK케미칼 직원을 소환해 원료물질인 폴릭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유통과정 등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검찰에 소환된 SK케미칼 관계자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마쳤을 뿐, 피의자로 입건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SK케미칼이 원료를 공급하면서 설명서에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재를 한 사실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을 제조하고 유통시킨 SK케미칼도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 '비극의 씨앗' SK케미칼,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 피해가나

SK케미칼은 이미 알려진 대로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PHMG를 제조해 공급한 업체다. SK케미칼은 원료 도매업체인 ‘CDI’를 통해 옥시에 PHMG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SK케미칼이 제조한 PHMG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사용됐고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가 인기를 끌자 이후 롯데마트PB상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홈플러스 PB ‘가습기청정제’ 등 11개 제조사에서 PHMG를 함유한 14개 제품이 나왔다.

당초 SK케미칼은 1997년 PHMG를 카펫 세척 등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공업용 살균제로 제조 신고를 했다. 당시 국내에서 PHMG를 제조·공급한 곳은 SK케미칼이 유일했다.

당시 SK칼의 전신인 유공은 PHMG를 제조 신고하면서 “PHMG는 항균 카펫 등에 첨가제로 사용하며 피부 접촉 시 오염된 옷을 벗고, 충분한 비눗물로 오염된 곳을 씻어야 한다”고 신고서에 적기도 했다.

이렇게 제조된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전용된 사실을 SK케미칼은 알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PHMG를 제조한 것은 맞지만, 이를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직접 공급한 것이 아니라, 화학물질을 별도의 도매업체인 CDI를 통해 공급한 것이어서 PHMG가 가습기 살균제에 쓰일 줄은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도 SK케미칼이 PHMG의 사용처를 알고 있었다는 단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용처를 알지 못했다고 해서 책임을 온전히 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 SK케미칼은 해당 물질의 흡입 독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SK케미칼은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하기 전인 2000년께 초중반 중간 유통상에 PHMG를 공급하며 "호흡기로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첨부했고 2003년에는 PHMG를 호주에 수출하면서 현지 정부에 흡입 독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또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물질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완제품을 제조한 이력도 있다. 지난 1994년, 당시 유공 시절인 SK케미칼은 국내 최초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

당시 유공은 ‘가습기 메이트’가 CMIT(클로로 메틸이소티아졸린)·MIT(메틸이소티아졸린) 성분을 0.5% 희석한 살균제로 가습기 물에 있는 콜레라·포도상구균 등을 100% 없앨 수 있고 인체에는 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 제품을 2001년 애경산업이 SK케미칼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애경’ 브랜드를 달아 팔아왔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제품이 꾸준히 판매돼 오면서 옥시 제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사실이다.

이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단체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이력이 있는 SK케미칼이 시중에 PHMG가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가 팔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K케미칼이 제조한 PHMG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데 SK케미칼은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사건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SK케미칼은 제조만 했을 뿐 판매는 애경 측이 했다며 책임에서 물러서는 모양세다.

한편, 피해자 가족들은 SK케미칼이 유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PHMG를 판매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SK 전.현직 임원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애경 '가습기 메이트'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아직 끝나지 않았다. SK케미칼 수사 가능성 있어.

다만,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면 SK케미칼이 민·형사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앞서 지난 2011년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메이트’에 함유된 CMIT·MIT에 대해 폐손상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때문에 현재 검찰은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10개 제품 가운데 해당 성분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들에 대한 집중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에 함유된 CMIT·MIT 성분은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미국의 종합화학회사 다우케미칼이 지난해 낸 상품안전평가서에는 CMIT와 MIT 성분에 대해 공기 중 흡입 시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많은 양을 섭취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평가서는 공기청정기, 에어컨, 의료기기 등의 살균 제품에 사용되는 CMIT·MIT의 최대 농도를 50ppm으로 권고했지만, '가습기 메이트'의 경우 이 기준의 최대 4배가량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때문에 이 성분과 관련, 가습기 살균제 전체에 대한 자세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해당 성분 등을 원료로 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에 대해 객관적 조사를 토대로 피해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경우 CMIT와 MIT 성분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SK케미칼에도 책임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양은미 기자  yyyem12@media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