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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K리그 역사 새로 쓴다.축구를 끝내는 순간까지 목표는 언제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
유창선 | 승인2016.05.07 16:16

[미디어세상=유창선 자유기고가] 전북 현대 모터스 간판 공격수인 이동국 선수는 1979년 4월 29일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전북 현대 간판 골잡이 이동국 선수가 K리그 역사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전북현대모터스@)

이제 이동국 선수는 K리그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역사를 새로 쓴다. 4월 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8라운드 수원 FC와 경기에서 전반 28분 페널티킥 선제골을 터뜨렸다. 자신의 올 시즌 4호 골로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250 공격포인트(골+도움)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지금까지 184골과 66도움을 기록했다. 이동국은 “기록을 의식하고 뛰지는 않는다. 기록은 단순한 기록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K리그 공격수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동국은 지난 1998년 프로축구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다. 1998년 FIFA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후반 34분 황선홍과 교체되어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국가대표 A매치 103 경기 33골을 기록했다. 2001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 SV 베르더 브레멘 6개월 임대 선수로 17게임에 출전해 한 골도 넣지 못했다.

2007년 1월 23일 프리미어리그 팀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게 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데뷔전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크로스를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대를 맞추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하였으나 이후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2시즌동안 23게임에 출전했지만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2008년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실패라는 꼬리표를 달고 국내 유턴한 뒤 성남 일화에서 10경기 2골의 저조한 기록으로 초라한 시즌을 보낸 후 전북으로 방출됐다. 당시 좋지 않은 모습 탓에 주변에서는 전북 최강희 감독의 지나친 모험수라는 우려도 있었다.

당시 축구선수로서 힘든 시절 이동국을 살린 것은 ‘재활 공장장’으로 불린 최강희 감독이었다. 최 감독은 공격수 이동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동국은 전북에 첫 정규리그 우승 선물을 했다. 이동국은 화려하게 부활하며 K리그 29경기 21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5년까지 두자리수 골을 기록했다. K리그 사상 MVP 통산 4회 수상이자, 2회 연속 수상의 역사를 세웠다. 전북 이적 전까지 K리그 통산 64골 29도움을 기록했다. 현재까지 전북에서만 120골과 37 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2015년 11월 이동국은 은퇴에 대해 묻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멋지게 은퇴를 할 것이라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은퇴는 없다. 현재는 운동장에서 뛰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 어느 순간 구단을 떠나게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아쉬움이 오기 전에 후회 없이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전북에 온 뒤 네 번의 정규리그 우승에 모두 기여했다.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이 평생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스승이다. 이동국은 “늘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장에 나간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부상 없이 뛰어야겠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최강희 감독은 이런 이동국에게 “사인회에 가면 섭섭함을 보이더라. 아들 대박이가 더 유명해서 그런 모양이다”고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이철근 단장이 이동국 선수가 언제 은퇴 하느냐고 최강희 감독에게 물어보았을 때, 최 감독은 “아이가 5명이니 앞으로 5년만 더 하자”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이동국 선수는 어린이날 특집 모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안녕하세요. 축구선수 이동국입니다. 요즘엔 ‘라이언 킹’이란 별명 대신 ‘대박이 아빠’로 불릴 때가 많더군요. 아시다시피 저는 다섯 아이의 아빠입니다. 골도, 아이도 많을수록 좋지요. 아이들이 쑥쑥 크는 모습을 보면 5명을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20년 넘게 축구해서 겨우 이름을 알렸는데 대박이는 18개월 만에 유명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동국 선수는 가정적인 모습의 ‘대박이 아빠’로 팬들에게 더욱 친숙해졌다는 평가다. (사진:전북현대모터스@)

그라운드에서는 용맹한 사자 같은 이동국이지만 집에서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이다. 그는 “혼자 기저귀를 갈고 청소하고 빨래를 해보니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아내 이수진 씨가 “우린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자. 마지막엔 꼭 웃자”는 위로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이동국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는 말도 나온다.

이동국은 “축구를 끝내는 순간까지 나의 목표는 언제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이동국 앞에는 ‘K리그 최초의 70(골)-70(도움) 클럽 가입’이라는 목표와 소속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목표가 남아있다.

앞으로 이동국 선수가 어떤 역사를 만들며 어떤 행보를 펼쳐나갈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유창선  mark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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