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이번 달 중순부터 자동차 사고기록장치인 EDR(Event Data Recorder)의 의무 공개 규정이 발효된다. EDR은 급발진 등 교통사고 발생시 유일한 사고기록 장치다.

그러나 이 EDR의 기록을 해당 메이커만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신뢰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두돼 왔다. 이 기록을 의무규정을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다만 이 규정이 지금 시행되도 소비자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우선 미국의 경우 공개 의무화를 진행하면서 공개해야 하는 구체적인 항목을 지정했다. 분석 장비도 모든 차종에 공통적으로 가능한 통용 장비를 지정해 누구나 객관적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EDR이 장착된 차량만 공개 의무 대상으로 돼 있다. 구체적인 항목 지정은 물론 구체적인 해석장비도 해당 메이커에 맡겨져 객관적인 단체에서 장치를 구입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더욱이 EDR 장치는 에어백을 제어하는 전자제어장치인 ACU에 포함된 소프트웨어인 만큼 에어백이 전개되지 않으면 기록이 되지 않는 맹점이 있다.

아울러 EDR에서 공개되는 데이터는 의미 있는 정보도 있지만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의 경우 운전자의 정보를 거의 확인할 수 없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운전자의 브레이크 작동여부를 온-오프 개념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항목도 의미가 없다. 가령 브레이크신호가 ‘ON’으로 나와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추정하고 동시에 목격자가 차량의 브레이크등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고 설정해보자.

여기서 메이커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덜 밟았다고 하거나 가속페달과 동시에 밟았다는 등 운전자 브레이크 조작에 문제를 제기하면 운전자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EDR은 자동차 사고기록장치로 간주하고 있지만 본래는 자동차 메이커에서 에어백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기 위한 자체적인 기록장치였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일반인들이 확인하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로 변모했다.

문제는 현재의 EDR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되레 운전자들이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게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운전자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원인은 물론이고 해결책도 없는 상태다. 현재 EDR를 이용한 책임소재를 찾고 있으나 위에 언급한 대로 운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만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를 비롯한 각종 교통사고를 더욱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게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자동차용 블랙박스’는 현재도 제작 가능하다. 지난 2009년 말부터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이용되는 대부분의 자동차는 ‘OBD2’라는 배기가스 자기진단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커넥터에는 운전자의 가속페달 밟는 정도를 비롯한 20여 가지 정보를 항상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EDR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객관적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치를 만들어 시험해 본 결과 에어백 전개과정과는 관계없이 항상 볼 수 있고 어느 장비로도 용이하게 확인이 가능했다고 한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시 운전자 실수인지 자동차 결함인지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정보를 활용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메이커들도 진정으로 소비자들을 위한다면 관련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