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테이' 스틸컷 (사진제공=신제민 감독)

한창 강의 중이던 교수가 쓰러진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교수가 있는 강의실은 걱정하는 학생보다 멈춰버린 강의에 시간을 때우듯 삼삼오오 떠들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이 더 눈에 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조교 ‘초아’는 과대표 정도로 보이는 ‘나영’에게 “나 위에 올라갔다가 올 테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애들 조용히 시키고”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진 교수를 뒤로하고 교수실 열쇠를 찾기 위해 조교실로 향한다.

영화 '스테이'는 상영시간 15분의 단편영화다. 2015 전주 국제 영화제 단편부문 경쟁, 미쟝센 단편영화제 경쟁, 대전독립 영화제 초청, 인천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눈도장을 찍었지만 많은 관객들이 관람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 관객들은 ‘이런 영화제가 있나?’ 하겠지만 영화 팬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단편영화제들이 국내에만 16개가 개최된다. 하지만 천만 관객이 낯설지 않을 만큼 거대해진 한국 영화계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열정을 무기로 영화현장을 누비는 영화인들이 상당하다. 그 중 묵묵히 노력을 다하고 있는 신인 감독이자 영화 ‘스테이’를 연출한 ‘신제민’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스테이' 스틸컷 (사진제공=신제민 감독)

▶ ‘가만히 있어’ 영화 ‘스테이’

‘가만히 있어’라는 대사가 뇌리를 스치는 영화 ‘스테이!’는 첫 장면부터 보고로 시작된다, 보고로 시작된 대사는 다시 명령으로 이어진다. 몇 번의 보고와 명령이 영화를 지나가지만 명령에 대한 불복종으로 겪는 갈등은 그리 크지 않다. 잠시 잠깐 실랑이를 벌이지만 곧 명령에 순응하고 그에 따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조교실에서 열쇠를 찾던 ‘초아’는 선배이자 같은 과 조교인 ‘진희’가 “이것부터 해”라며 떠맡긴 일부터 어쩔 수 없이 처리하게 되고 뒤늦게 다시 강의실을 찾은 ‘초아’는 이제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교수를 보고 “지금까지 뭐 한거야?”라고 묻는다. 그러자 ‘나영’은 말한다 “선배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

영화 ‘스테이’가 꼬집은 조직에 따른 상하관계의 부조리는 상당히 아프다. 영화는 일의 우선순위 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에 의존하는 일 처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제민 감독 (ⓒ양은미 기자)

▶ 개인의 감정과 분노를 영화로...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느껴

그는 “개인적인 감정, 분노 그런 것들이 사회 구성원들이 현재도 느끼고 있는 그것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한 관객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또 다른 영화 해석을 낳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영화 스테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르겠지만 표면적으로 교수가 쓰러진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어’라는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인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그는 “기성세대가 보기에 말 잘 듣는 학생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오는... 하지만 그것에 따른 부작용이 반드시 있음을 보여준 영화다. 또 타인에게 냉담한 개인은 교육현실이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자아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교육현장의 살벌함이라고 할까...”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내용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많이 끌어낸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또 ‘스테이’를 향후 ‘사회적 스릴러’로 발전시켜 장편영화로 촬영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도 언급했듯, 스테이는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와도 같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나니 스치듯 떠오른 말이 있다. “영화도 언론 못지않은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지난 26일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고영재 서울독립영화제 대표가 한 말이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 단편영화와 관련된 영화제가 국내에서만 16개가 개최되지만 단편영화의 접근성은 높지못하다.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공식사이트)

▶ 신인 감독 ‘신제민’ 독립 단편영화인들을 위한 ‘놀이터’를 꿈꾸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특징인 단편영화는 신 감독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제작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관객들이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솔직히 단편은 영화제 외에는 출구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화제 외에 출구가 많아 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올해 ‘미장셴 단편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면서 “정말 놀랐던 것은 ‘미쟝센 단편영화제’ 때 상영된 단편영화들을 IPTV와 연계해서 상영수입과 방송수입을 분배해 주시기도 하는 것을 보고 새롭다는 생각을 했다”며 “유트브 개인 채널도 있을 수 있고, 미국의 넷플랙스(영화와 TV 프로그램과 같은 영상 콘텐츠를 맘껏 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단편영화의 접근성을 높이면 좋을 것 같다. 고객이 없다고 사업을 안 하는게 아니라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매체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신 감독은 “단편영화 형식이라면 어떤 영화든 즐길 수 있는 공간, ‘놀이터’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현실적으로 제작환경이 어려운 감독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감독들에게 든든한 기반도 마련해주고 더 크게 퍼져나갈 수 있는 확성기 같은 역할을 해주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 할 즈음 다소 틀에 박힌 질문 같지만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신 감독은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그리고 싶다”며 “죽을 때 까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했듯 마음껏 꿈을 키워갈 수 있는 ‘놀이터’가 보다 빨리 만들어져 이를 통해 거장을 꿈는 신 감독을 비롯한 많은 독립 단편영화 감독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