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현철 교수 페이스북 )

[미디어세상=이주현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0시 22분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14대 대통령으로서 32년간 드리웠던 군사정권의 구름을 걷어내고 이른바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1954년 만25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국회의원 9선에 이르는 기록을 남긴 정치인생이 1992년 대통령 당선으로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의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민주화의 거목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중 공과가 가장 뚜렷한 대통령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과감한 행보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임기 말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 등을 이유로 국민적 비난을 사기도 했던 대통령이다.

임기 말 터진 차남 현철씨의 한보비리 사건은 김영삼 정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방송 자료화면 캡쳐)

▶ YS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던 것일까 과거사 정리와 거침없던 경제 개혁의 성과들이 임기말 역풍을 맞아 쓰러졌다. 임기 초 90%에 달하던 지지율은 10% 밑으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청렴함을 내세웠던 문민정부의 시작은 차남 현철씨의 한보비리를 통해 얼룩진 민낯을 드러낸채 김영삼 대통령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의 부도를 발단으로 밝혀진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에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특히 한보비리 사건은 건국 후 최대 금융비리사건으로 당시 한보그룹 회장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금융계 핵심부가 서로 유착하면서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정치계에 조직적인 로비를 벌여왔던 것이 드러나고 연루된 정치인들이 수사를 받는 도중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한보 특혜대출의 배후이며 비자금 120억원을 관리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철씨는 한보그룹 등 대기업으로부터 66억원을 받고 12억원을 탈세했다는 혐의로 1997년 구속기소되고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우석 전 내무부 장관 등 측근들도 잇따라 구속되면서 문민정부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신청을 했다. (ⓒ방송 자료화면 캡쳐)

▶ IMF로 초라하게 물러난 대통령...

재계 14위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의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 사태를 맞게됐고 은행들도 함께 흔들리게 되면서 결국 외국 금융기관들이 자본을 회수하며 상황이 악화됐다.

4월 삼미그룹 부도, 7월 기아자동차 도산 사태가 터지더니 쌍방울그룹, 해태그룹이 위기를 맞았고 한라그룹이 차례로 쓰러졌다. 이에 따라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넘어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국내 경제 사정에 해외 금융기관들은 부채 상환 요구를 시작했고 결국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가까스로 면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고,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정부도 경제회생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국민도 근검절약에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IMF는 55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요구, 이는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지며 김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삶을 뒤바꿔 놨으며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외환위기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화를 내세워 OECD 가입을 추진하면서 너무 이른 외환자유화가 이루어진데 외환위기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금융실명제로 시작해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 반도체 호황, OECD 가입 등의 쾌거를 이루던 김영삼 정부는 IMF로 인해 초라한 결말을 맞았다.

한편 18년 전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22일, 김 전 대통령은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거칠게 걸어왔던 그 큰 길을 뒤로하고 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