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분향소에 국회의원들을 비롯 많은 인사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미디어세상=이주현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00시 22분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14대 대통령으로서 32년간 드리웠던 군사정권의 구름을 걷어내고 이른바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1954년 만25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국회의원 9선에 이르는 기록을 남긴 정치인생이 1992년 대통령 당선으로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의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민주화의 거목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중 공과가 가장 뚜렷한 대통령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과감한 행보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임기 말 외환위기와 측근비리 등을 이유로 비난을 사기도 했던 대통령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이후 '하나회 해체'를 시작해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진행한다. (ⓒ방송 자료화면 캡쳐)

▶ YS 하나회 해체...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당초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69년 박정희 정권 당시 3선 개헌에 반대하다 괴한들로부터 초산 테러를 당한 일도 있었으며 1980년엔 신군부에 의해 3년간 불법 가택연금까지 당하기도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한 인물로 민주화를 위해 군부 독재에 맞섰다.

누구보다도 군부 독재 아래 혹독한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취임 이후 단행된 하나회 해체는 숙명과도 같은 과제였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11기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는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고 ‘신군부’로 불리며 5.6공 정권의 핵심 기반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3일만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 등 군부 핵심 하나회 세력을 일거에 제거하고 군부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그는 하나회 해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전사령관, 1군 사령관, 3군 사령관, 2군 작전 사령관 등 야전 군단장, 사단장까지 군 고위직 인사들 모두 비 하나회 출신으로 교체했다.

이러한 거센 칼바람이 이는 가운데 하나회 회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말을 남기며 하나회 해체를 거침없이 진행했다.

결국 그의 칼날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향했다.

1995년 김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5.18 특별법제정계획을 발표하면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경진압을 주도한 신군부 핵심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 창립자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고 이로써 “성공한 쿠테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며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그렇게 변화와 개혁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출발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일제 침략의 상징이던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경복궁 복원, 일재의 잔재로 지적되던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고 광주민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하고 5월 18일을 기념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 척결을 목적으로 '금융실명제' 시행을 공포한다. (ⓒ방송 자료화면 캡쳐)

▶ 대도무문... 정경유착 고리 끊는 ‘실명제’ 실시

한번 달리기 시작한 그의 개혁 드라이브는 멈출 줄을 몰랐다. 올바른 길을 걸어갈 때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의 좌우명처럼, 깨끗한 길을 갈 것을 약속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렴함을 내세워 부정부패 자금의 흐름을 막기 위해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1993년 8월 12일 저녁,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해 ‘금융실명제’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공포했다. 금융거래 투명성을 높여 지하자금의 이동경로를 차단의 목적이었다.

시행에 앞서 금리 폭등, 주가 폭락의 우려가 나왔지만 특유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시행된 금융실명제는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의 최대의 치적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그는 이후 회고록에서 “기득권의 저항을 피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기보다 대통령 긴급 명령이란 형식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지하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될 조짐을 보이자 1995년 1월 ‘부동산실명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그의 경제 개혁은 ‘실명제’를 통해 완성됐다.

또한 그는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고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 이후 국회에서는 공직자윤리법이 통과됐고 1993년 9월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공직자 재산 공개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의 단호하고 거침없던 경제 개혁은 우리 사회의 변화, 개혁의 회오리를 불러와 1996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의 결과를 낳았지만 아쉽게도 임기 말 IMF 구제금융 사태로 그 빛을 잃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