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킨 사건’과 관련 민간인 해킹 의혹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극구 부인하다 인정, 증거가 충분치 않은 해명으로 문제 덮기가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에 보낸 메일 일부 (방송 캡쳐)

◆ ‘국정원 해킹 사건’ 발생에서 자료 삭제까지..

지난 5일(현지시각),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이탈리아의 ‘해킹팀’의 메인 컴퓨터에 누군가 접근해 내부정보를 유출하면서 국내에 ‘국정원 해킹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은 대선을 앞둔 2012년에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인 RCS(원격 제어 시스템)을 구입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 해킹 프로그램을 국내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국내 언론사인 [한겨례]는 몇 가지 정황들을 제기한 바 있다.

▶국정원이 ‘해킹팀’에 카톡 검열을 기능 요구

▶국내용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모델로 ‘맞춤 해킹’을 의뢰

▶국산 백신프로그램인 AnLAB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

▶국정원이 바이버(미국 스마트폰 메신저: 사찰을 피할 목적으로 국내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 해킹 문의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 ‘천안함 보도 관련 문의’ 등의 MS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 심어달라 요구

▶네이버 맛집 소개 블로그, 벚꽃축제 블로그, 삼성 업데이트 사이트 유사 주소 등의 피싱URL 제작을 수십차례 의뢰

이러한 정황들을 근거로 ‘국정원 민간인 해킹 의혹’ 논란이 거세지자 야당에서는 보안 전문가인 안철수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국민 정보 지키기 위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진상 규명을 위해 움직이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야당에게 ‘의혹 부풀리기만 하지 말고 국정원 현장 조사에 직접 응하라’라고 대응하고 나서 여.야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번졌다.

논란이 커져가자 지난 17일 국정원은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소프트웨어를 구입했으나 용도는 연구용이며 해외에서 필요한 대상에 사용할 목적으로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에 대해 이병호 국정원장은 사용기록을 국회 정보위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밀 이지만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비상조치로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날 18일 국가정보원 소속 해킹 프로그램 구입에 관여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인 임 씨가 자살한 채 발견돼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국정원 직원 임 씨는 유서에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 활동에(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남겼고 국정원은 자살한 임 씨가 삭제한 자료는 100% 복구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국정원의 삭제 파일 복구 작업은 일주일이 소요됐고 지난 27일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복구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정원 해킹 사건 관련 해명을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방송 캡쳐)

◆ 물음표만 더하는 국정원 해명 ‘믿으시오’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했다.

이 원장은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내 직을 걸고 불법 사찰을 한 사실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삭제했다 복구한 51건의 목록을 공개했다.

대상이 누구인지, 내용은 어떤 것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51개의 파일 중 10건은 대북 관련 해킹에 성공한 파일이며 나머지 10개는 해킹 실패 파일, 나머지 31건은 실험.연구용 이었다는 목록 뿐이었다.

또 이 원장은 국내 사찰은 전혀 없었고 문제가 된 RCS, 즉 리모트컨트롤시스템으로는 카카오톡 도청도 불가능하다며 국정원에 오면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보위 회의에 참석한 야당 의원들에 따르면 이 외에도 단순히 delete키를 이용해 삭제한 파일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한 질문에 국정원은 “해킹 관련 서버 용량이 600기가바이트 정도로 굉장히 크고 그 안에서 51개의 파일을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렸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했다

이어 파일 삭제 권한이 없는 과장 직책이었던 임 씨가 파일 삭제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에는 삭제 권한과 삭제 규정 기준에 대한 것은 밝힐 수 없다고 해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국정원이 “RCS 관련 모든 일은 임 씨가 주도해 왔고 임 씨가 모든 책임을 졌다. 그렇기 때문에 임 씨가 사망함으로써 상당한 부분을 알 수 없게 됐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앞서 야당에서 의혹을 제기한 국정원이 해킹을 시도한 IP 중 국내 통신사인 SK텔레콤의 IP 3개 회선이 발견 된 것과 관련해서는 “국정원 실험용 휴대전화”라며 해명했다고 전했다.

특히 국정원은 야당에서 요청한 컴퓨터 시스템의 모든 사용내역을 기록하고 있는 로그 파일 원본 등 30여 개의 자료는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믿어 달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경민 의원은 “30개가 넘는 자료를 100% 가까이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 후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방송 캡쳐)

한편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 이후 해킹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야당은 “국정원의 말이 진실이라면, 로그파일을 제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국정원이 근거 빈약한 ‘안보논리’만을 내세워 진실을 은폐하고 인권침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국민의 더욱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여당은 “야당은 의혹만 제기할 뿐 뚜렷한 증거 없이 맹탕 질의만 이어지게 했다”며 “안보이익이 손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묻지마 의혹제기’는 우리 사이버 안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앞으로 여야가 합의하는 외부 전문가와 국정원 실무자의 간담회가 이어질 예정으로 정확한 자료 제출과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간담회가 이번 정보위 현안보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joo0801@media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