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사기에 대기업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국내 1위 화학업체인 LG화학은 글로벌 거래 기업을 사칭한 이메일에 속아 어처구니 없이 240억을 한 번에 날렸다.

240억원은 LG화학의 분기 영업이익 4577억원의 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그동안 국제금융사기 피해사례가 종종 발생해 왔지만 이번 LG화학의 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지난 3월 LG화학은 거래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자회사 ‘아람코프로덕트트레이딩’으로부터 납품대금 계좌가 변경됐다는 가짜 이메일을 받고 허위 계좌로 240억원을 송금했다.

LG화학은 아람코프로덕트트레이딩에서 나프타를 수입한 뒤 가공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LG화학은 자체 조사 결과 240억원을 송금한 계좌가 거래처를 사칭한 다른 사람의 계좌인 걸 뒤늦게 알게 됐고 지난 달 29일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LG화학이 이메일 해킹 사기로 240억원의 사기피해를 입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 이메일 한 통에 수백억 손실... 무기력하게 당했다.

업계에서는 매출 20조원의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에서 수백억원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LG화학이 당한 사기는 거래처나 지인을 사칭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자산, 정보를 노리는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으로 지난 2013년과 2015년에는 스피어 피싱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을 정도로 피해가 빈번하다.

이처럼 흔한 사기수법에 보안 전문가 등 관련 담당자들이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거래 계좌가 변경됐다는 이메일을 받은 LG화학의 담당자는 이메일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통화를 했고, 서류까지 주고받아 확인한 뒤 별다른 의심없이 변경 계좌에 240억원을 송금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거래 상대방이 계좌 변경을 요청할 경우 송금 전 여러 번 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메일에 적힌 전화번호 말고도 기존에 연락을 주고 받던 전화번호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등 여러 번 확인 절차를 진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국제 거래에서 특단의 사유가 있지 않는 한 결제계좌를 바꾸지 않는 게 관행으로 LG화학 같은 대기업에서 거래 업체의 계좌 변경 요청과 관련한 대응법이 없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이러한 LG화학의 사기피해는 허술한 업무처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관련 매뉴얼이 있고 나름의 절차가 있다. 담당자가 확인 작업을 거쳤으나 워낙 치밀하게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면서 “범죄조직을 검거하기 위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차원에서는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내부적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보통 이런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은행에 명의와 계좌가 일치할 때만 송금하도록 조건부 송금요청을 하는데 은행에서 이런 부분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거래선과 은행에도 귀책 사유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LG화학은 계좌에 송금한 은행과 거래 업체를 상대로 법적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LG화학도 당한 국제사기피해 막는다.

이처럼 대기업도 무기력하게 당한 국제금융사기와 관련, 금융감독원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제2의 LG화학 사태’를 막기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 10일 국제금융사기 피해유형 및 대처요령에 대한 홍보.교육 활동을 적극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이 많이 당하는 국제금융사기 유형은 국제무역사기, 국제선불사기, 염색외화사기로 나뉜다.

국제 무역사기는 LG화학의 경우처럼 국제사기단이 해외 무역거래처 등의 이메일계정을 해킹한 뒤 송금계좌가 변경됐다는 이메일을 업체로 보내 대금을 사기범의 계좌로 받아 가로채는 수법이다.

국제선불사기의 경우는 ‘거액의 유산.비자금을 나눠 갖자’, ‘아프리카 공물수출 등 추자기회가 있다’라는 식으로 무차별 이메일을 발송한 후 관심을 갖는 피해자로부터 일정액의 선불 수수료만 챙기는 수법이다.

국제선불사기범들은 대부분 정부 고위직 관료나 유력인사를 사칭하거나 공문서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신뢰감을 획득한 후 보증금·세금·인지대·활동자금·뇌물제공 등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먼저 입금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염색외화사기는 검은 색종이 또는 영문글자가 새겨진 종이뭉치를 보여주면서 “미국 정부가 분쟁지역 국가에 은밀히 보관하느라 염색해 놓은 돈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며 약품 구입비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한 중소기업인이 스위스 주재외교관을 사칭한 나이지리아인 A씨가 도난방지를 위해 검은색으로 염색한 달러다발을 약품으로 검은색을 씻어내고 미달러로 바꾸는 것을 보여주자 사업추진비로 1500만원을 전달해 피해를 입었던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금감원과 중기중앙회는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오는 6~7월을 ‘국제금융사기 피해예방 집중 홍보기간’으로 설정하고 주요 피해 유형 및 대처 요령을 정리한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주요 방송사 교양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대처법을 집중 전파하고 피해예방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홍보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