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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 1금지된 땅에도 봄은 오는가 7
조대영 칼럼리스트 | 승인2016.04.08 12:00

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평신도 신학은 ‘평신도를 위한 신학’이 아니다. 평신도는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적 존재로서 부수적인 목회자보다 존재론적으로 앞서는 존재다. 그러므로 존재의 중요성에 있어서 목회자가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는 평신도의 소명을 대신할 수 없으며 왕 같은 제사장의 위치는 목회자로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다. 이러한 근거 위에 오직 교회에는 평신도를 중심적 구성요소로 하는 전체적인 교회론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 콩갈 신부의 주장처럼 새로운 교회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1)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 한다
평신도 신학이란 평신도가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정체성과 중요성에 대해 올바른 인식레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책임 있는 평신도가 되는데 필요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을 축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것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보아도 교회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과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소명은 이러해야 한다.

첫째,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중심적인 존재가 되고 교회를 이 세상으로부터의 안전한 피난처로만 생각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과 소명을 배반하는 것이며 이단적인 요소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모범을 따라 세상 중심적인 존재가 됨으로써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중심적이라고 해서 WCC의 기본 노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온통 관심이 자기 자신의 확대와 행복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 중심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으로서 교회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교회 자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근본적인 방향전환으로부터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창조한 자기의 몸으로서의 근본 모습은 선교적이요, 또한 목회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두 모습 속에 교회의 본질과 소명이 표현되어 있다.

이 두 모습을 교회의 참된 표징으로 제의하는 것은 아직은 희망을 걸기 어려울지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육체가 살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요한 것처럼, 교회에는 이 두 모습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자기 명상과 자기 찬양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도구나 선택된 그릇으로 쓰임 받게 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 교회는 선교이다
교회는 선교적이요, 사도적이라는 말을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면 ‘교회는 선교이다’(The church is mission)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라든가, ‘교회의 선교적 책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교회의 선교적 과제나 책임이라는 말은 교회의 많은 활동 중의 하나로 인식되며 이러한 선교활동은 어떤 때와 장소에 제한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교회는 선교이다’라는 것은 교회가 행하는 모든 사역의 장(場)의 모든 때와 모든 장소가 선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선교활동을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위대한 위임명령을 인용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며 끝없는 과제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우의해야할 사항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는 문구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 모든 권세를 선교사역을 실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용권을 다 허락하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교회의 선교적 확장이 단순히 하나의 의무의 성취에 불과하다면, 선교가 교회의 표징은 될 수 있어도 본질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더 깊은 의미를 말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0장 21절에서도 이에 관하여 대단히 깊은 의미의 말씀을 하고 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그의 사도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사도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신적인 사도계승이라고 말한다.

이 하나님의 독특한 사도로서의 교회는 전체로 보아 필연적으로 사도적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사도가 되었고 모든 성도들도 또한 사도계승설에 의해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사도, 또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소명과 파송기사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선지자와 사도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와 선교의 통일성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며 참된 증인이 되려는 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교회는 분열이나 심각한 논쟁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통일과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이요, 분열과 다툼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므로 이런 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신적인 사도계승설은 우리들의 사도계승설에 선행하며, 유일하고 완전한 선교는 하나로 통일된 교회의 선교이다.

교회의 선교적 또는 사도적 면모는 교회의 존재와 소명을 동시에 표현하며 이 사실은 전 교회와 교역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에 적용되는 것이다.

교회의 생명을 표현하고 교회의 과제를 실현함에 있어서 평신도가 교회의 극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현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발견일 수 있다. 평신도의 선교적 사명이 점점 더 분명하게 주장되고 있다는 것도 또한 새로운 발견이지만,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가장 곤란한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실을 파악하는 것과, 이 사실을 교회의 현실 속에 실현하고 여러 은사와 재능과 자질을 가진 평신도들의 생활 속에 침투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하여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의 외관과 구조 전체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배우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모험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목회자’는 전혀 새로운 모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요 어려움이다.

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평신도는 교회와 세계 안에서 참된 정체성과 소명을 자각하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의 중요한 표현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에서 극명하게 나타남을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도로서의 평신도의 소명은 교회의 가장 위대한 잠재 세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전도에 있어서 ‘대각성운동’이나 ‘십자군’보다 더 위대하고 깊은 잠재 세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예로서, 새로운 교회론에서는, 목회자는 행동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를 훈련시켜 선교사로 파송해야 할 의무가 일차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조대영 칼럼리스트  dycho11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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