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양은미 기자] 연일 쏟아지는 뉴스가 가혹하다. 아이들이 안전으로 부터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경우 얼굴을 모르는 낮선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나 잘 알고 지내는 가까운 이웃, 친지 등 면식범에 의한 범죄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절대 안전해야 할 집, 특히 가족으로 부터 당하는 범죄 등 아이들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기결석생 전수조사를 실시하면서는 보기에도 끔찍한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 희생된 아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 이번 장기결석생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아이들의 희생이 대부분 친부, 친모 등 가족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더욱 경악스럽다.

▲정부는 인천 초등생 탈출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기결석생 전수조사를 실시했다.(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지난 2015년 12월 12일 11살 여자 아이가 자신의 집 가스배관을 통해 탈출, 인근 슈퍼에서 빵을 훔쳐 먹다 발견됐다. 슈퍼 주인에게 발견된 아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한겨울에 반바지와 반소매 티는 물론 맨발로 나타났기 때문. 11살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왜소한 체격과 행동 등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결과 아이는 친아버지와 계모로부터 방임과 상습적 폭행을 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온라인 게임에 빠져 딸을 돌보지 않았다. 학교도 보내지 않았으며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때문에 배고픔에 시달리던 아이는 집을 탈출했고 인근 슈퍼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빵을 집어든 것이다.

이 모습은 그대로 CCTV에 담겼고 이를 본 국민들은 크게 공분했다. 이를 계기로 경찰은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조사가 계속되면서 감춰져있던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먼저 실체를 드러낸 것은 지난 1월, 부천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아들을 마구 때리고 강제로 엎드리게 한 뒤 발로 머리를 차는 등 2시간 동안 가혹하게 구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집안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힌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이다.

피해 아동의 경우 4년 동안 학교에 결석 상태였고 이번 정부의 전수조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이후 정부는 조사를 통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결석한 장기결석 초등학생 287명을 확인했고 전수조사를 미취학 아동과 중학생으로 확대 실시했다.

조사는 급물살을 타고 확대됐다. 이 가운데 지난 2월 3일에는 부천에서 목사 아버지가 중학생 딸을 가출 이유를 추궁하며 5시간 동안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집에 방치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울러 사건 이후 2주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7살 난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폭행하고 의자에 묶어 놓는 등 학대해 숨지자 같이 살던 지인들과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경남 고성 초등학생 암매장 사건’이 연이어 드러났다.

▲계모의 학대로 숨진 신원영군도 일시적으로 아동보호기관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원영군의 죽음은 주변에서 막을 수 없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계속해서 계모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7살 아이를 3개월여 간 욕실에 가두고 락스를 붓는 등 무자비하게 학대해 아이를 숨지게 하고 시신을 남편과 암매장한 ‘평택 원영이 사건’과 친모가 4살배기 딸아이를 잔인하게 물고문해 아이가 숨지자 이를 함께 암매장한 의붓아버지가 경찰에 구속된 이른바 ‘청주 4세 여아 암매장 사건’도 밝혀졌다.

이처럼 아동학대로 안타깝게 사망한 아이들은 대부분 보호를 받아야 할 가정에서 철저히 짓밟혔다. 부모에게 조차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을 주변의 손길도 미치지 못했다. 계모의 학대로 숨진 원영군의 경우 아동보호기관의 보호를 일시적으로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원영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지자체, 교육 현장, 관련 단체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근절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아동학대 ‘부모교육’으로 사전에 막는다?

이처럼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29일 아동학대 사후지원은 물론, 아동학대 예방과 조기발견 등 사전예방 시스템 구축을 골자로 하는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내놨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3년 10월 의붓딸을 가혹하게 폭행하고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히는 등 잔인하게 학대한 ‘울산 계모 사건’을 계기로 2014년, 가해자 처벌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이 정작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고 조기 발견하는 데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아동학대 사전예방 시스템을 도입해 아동학대를 미리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9일 정부는 아동학대 사전예방 시스템 구축을 골자로 하는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이에 따라 정부는 아동, 초.중.고등학생 등 대상별 위기아동 발굴 매뉴얼을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서도 조기에 발견하기 힘든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상시발굴시스템인 ‘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2017년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또한 자치단체 읍면동별 이.통.반장, 주민자치회,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 조기 발견과 신고 체계를 강화하고,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신고의무자를 확대하는 한편, 아동학대 미신고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적극적인 신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이날 정부 발표 내용 가운데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부모교육을 강화해 나가는 등 아동학대 대국민 인식개선을 추진키로 한 방침이 눈길을 끌었다.

먼저, 정부는 생애주기별로 결혼 전부터 자녀 학령기까지 지속적으로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아동 또한 스스로 학대를 인식하고 신고 등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통해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초.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과 대학교의 교양과목 등을 통해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결혼 전이나 임신,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부터 부모교육을 실시한다. 또 부모가 양육수당이나 보육료를 신청할 때나, 보건소,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방문할 때, 학교 입학설명회나 학부모 상담주간 등에 부모교육이 실시된다.

하지만 이런 부모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권고나 유도를 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부모교육 자체를 강제할 수는 없다. 또 대부분 학대를 자행하는 부모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교육이나 의료 지원 등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취약가정의 부모가 이런 교육을 받을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정부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생애주기별로 부모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사진=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보건복지부)

▶아동보호기관 상담 인력 관리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아동학대 사건 발생 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동행 출동해 가해 부모로부터 피해아동을 신속하게 분리하며 분리된 아동과 그 형제자매를 즉시 긴급복지지원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하반기 아동학대 조기 개입과 서비스 연계.의뢰에 필요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을 확충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 전국에 56곳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을 2~3곳 더 늘리고 근무 인력도 100여 명 증원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기구 증설이나 인력 증원에 대한 예산 확보는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현재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들은 1인당 약 2만여 명의 아동을 책임져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산 확보도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의 질을 보장할 만큼의 정부 지원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또한 그 보다도 아동보호기관의 상담사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다시 되짚어 봐야할 필요가 있다.

앞서 지난 2014년 6월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인 굿네이버스 상담 교사가 당시 7살 남자어린이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당시 아동학대로 심리치료 과정에 있던 어린이를 상담치료를 해주겠다는 취지로 아동캠프에 참가시킨 해당 기관의 상담사는 아이의 성기를 만지고 알몸을 촬영하는 등 강제 추행했다.

이 상담 교사의 경우 성폭력범죄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어 ‘성폭력범죄경력조회’의 그물을 빠져나갔고 사실상 이런 범죄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을 보호기관 자체 내에서는 알지 못했다.

특히 피해자 측은 “상담교사와 굿네이버스의 적절한 사과가 미흡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피해자 측이 “아동이 받은 고통에 비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동학대 예방 근절을 위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부 상담교사들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해당 기관에서는 유사 사고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직원 채용 시부터 인적성검사나 평가 면담 등을 강화하고 윤리교육을 강화해 나가고 직원 모니터링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전했지만 아동보호기관의 상담 인력 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해 보인다.

물론 현재 많은 상담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동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이런 유사 사고를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상담 인력 관리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 기관을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은 물론이며 보호기관 자체도 실효성있는 관리 체계로 아동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은미 기자  yyyem12@media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