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양은미 기자] 경북 청송의 한 마을회관에서 농약이 들어있는 소주를 마시고 주민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농약 소주 사건’이 발생 9일째를 접어들고 있다.

일단 경찰은 마을 내부인의 소행으로 보고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하는 등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뽀죡한 단서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 자칫 미제 사건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밤, 경북 청송의 한 마을회관에서 농약이 들어있는 소주를 마신 마을 주민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그날 밤, 누가 소주에 농약을 넣었나?

지난 9일 밤, 50여 가구의 주민 98명이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 던 평온한 농촌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이장 박(62)모씨와 마을 주민 허(67)모씨가 소주를 마신 뒤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박 씨는 이튿날 끝내 숨졌고, 허 씨는 중태에 빠졌다.

사건 발생 직후 청송경찰소장을 본부장으로 지방청 광역수사대, 청송경찰서 경찰관 등 총 46명으로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광역과학수사팀을 현장에 투입해 현장 감식을 실시했다.

감식 결과 박 씨와 허 씨가 마신 소주와 잔 2개, 바닥 등을 닦은 것으로 보이는 휴지 등 4점에서 고독성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검출됐다.

이들이 마신 소주는 이날 마을회관 김치 냉장고에 보관된 소주 30여병 가운데 1병으로 이 소주를 제외한 다른 소주에서는 메소밀이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을회관에서 소주를 마시는 특정 주민들을 노리고 누군가 고의로 독극물을 넣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문제의 소주가 냉장고에 보관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마을주민들을 상대로 피해자들의 채무 관계나 원한 등 1차 탐문 조사를 실시하고 사건 발생 당일 마을회관에 평소처럼 모여있던 피해자를 제외한 주민 11명에 대한 진술을 종합해 용의자 특정이나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북 청송의 '농약 소주'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소주병 등에서 피해자들의 것이 아닌 제3자의 DNA를 발견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경찰, 용의자 지목할 만한 정황, 결정적 단서 찾지 못해... 쩔쩔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 날 마을의 40여 가구를 수색해 범행에 쓰인 것과 같은 농약을 보관하던 집 4곳을 찾았으나 개봉되지 않은 상태이거나 손을 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소주병 등에서 피해자들의 것이 아닌 남녀 3~4명 정도의 복수 유전자(DNA)가 발견돼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경찰은 이 DNA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용의자 특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경찰이 마을주민 전체를 잠재적 살해 용의자로 보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지문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막연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전체 DNA를 수집해 비교한다고 해도 주민들에게 DNA를 강제로 채취할 방법이 없다.

또 마을회관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소주는 모두 마을 주민 자녀들로부터 찬조 받은 소주들로 범행에 사용된 소주 역시 찬조 받은 소주 가운데 하나다. 때문에 마을과 상관 없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어 용의자를 특정하기에는 더욱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13일부터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2차 탐문수사를 실시하는 등 용의자 특정과 범행동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청송 경찰서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틀 전인 7일 마을회관에서 현동농협의 보고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는 30명 안팎의 주민이 참석했다. 이날 보고회가 끝나고 일부 주민은 평소처럼 마을회관에서 술을 마신 뒤 귀가했다.

아울러 사건 발생 하루 전인 8일에는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이기는 했지만 술을 마신 사람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경찰은 7일 밤과 8일 밤, 마을회관에 누군가 침입해 소주에 독극물을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편, 경찰은 마을 주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몰래 마을회관에 들어와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묻지마’ 식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 경북 상주에서도 메소밀을 넣은 사이다를 나눠 마신 할머니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 닮은 듯 다른 두 사건 청송 '농약 소주'와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농약 소주’ 사건은 여러모로 지난해 7월 경북 상주에서 벌어진 ‘농약 사이다’ 사건과 비슷하다. 그러나 농약 사이다 사건의 경우 발생 3일 만에 용의자를 붙잡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경찰은 용의자 특정이 어려운 것일까? 먼저 마을 입구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가 있었던 상주와 달리 청송에는 마을 안에 CCTV가 아예 없어 마을회관 쪽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또 마을회관 안에 할머니 7명 중 6명이 사이다를 먹고 쓰러진 상주와 달리 청송은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사람만 13명으로 이 중 소주를 마신 박 씨와 허 씨를 제외한 11명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

특히 상주의 경우 용의자 박(83)할머니가 직접 사이다를 꺼내와 할머니들에게 건네고 자신은 사이다를 먹지 않았던 점 등 수상한 행동이 포착돼 용의자 지목이 빠르게 이뤄진 반면, 청송은 피해자들이 직접 소주를 꺼내와 나눠 마신 뒤 변을 당했고 주변에 범행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데다가 일부 주민들은 경찰 수사에 거부감을 보이면서 아예 자녀 집으로 거처를 옮겨 버리거나 다른 주민들의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집에 있던 농약병을 하천에 내다 버리는 일까지 벌어져 경찰 수사에 혼선을 빚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직까지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증거물이나 목격자의 증언, 사건의 동기 등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수사가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로, 범인이 도주했거나 범행 도구를 숨겼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자칫 미제 사건으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송 '농약 소주'와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에는 모두 메소밀이 범죄에 이용됐다. (사진=방송 자료화면 캡처)

▶ 판매 금지된 농약인데도 범죄에 이용되고 있어... 해결책 없나?

청송 ‘농약 소주’ 사건과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에는 모두 누군가가 마을회관 냉장고에 들어있는 소주와 사이다에 ‘메소밀’을 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소밀은 주로 진딧물 방제에 쓰이던 원예용 살충제로 냄새와 색깔이 없어 음료에 타면 알아차리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메소밀이 독극물 범죄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앞서 메소밀은 심각한 독성 때문에 이미 4년 전에 제조와 판매가 중단됐으며 두 번의 회수를 거친 상태다. 그런데 왜 메소밀은 아직까지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를 지적하고 있다.

메소밀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2년 메소밀의 제조·판매를 중단시켰으나 그 전에 팔린 메소밀은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농가에 방치됐다.

또 지난해 9월과 10월,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나서 고독성 농약 회수 작업을 벌였으나 이 또한 전수 조사가 아닌 자발적 반납으로 전국의 농가를 다 확인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따라서 회수량도 1200병여 정도로 미미한 편이었다.

이에 농식품부는 메소밀이 살인 등 강력사건에 범행도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음에도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청송 ‘농약 소주’ 사건을 계기로 다시 메소밀 회수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인력과 조사 비용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전수조사에 돌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정부가 실효성 있는 방법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은미 기자  yyyem12@media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