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양은미 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우리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Arco Young Art Frontier)'의 일환인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공연예술분야 창작자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로 선정된 설유진은 1월 31일 막을 내린 연극 '초인종'의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자신의 창작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첫 작연출 작품을 통해 아티스트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 [제1막] 솔직하게 열정을 드러내다.

▲'초인종'의 작연출 설유진(사진=양은미 기자)

설유진의 첫 시작은 대학 졸업 후의 광고 촬영장 아르바이트였다. 설유진은 그 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현장의 매력에 단번에 빠져들게됐고, 조감독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엄마가 촬영장으로 저를 찾으러 오셨어요. 집에 안 들어갔거든요.(웃음) 촬영장에서 일할 때는 정말 가끔 집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참다못해 엄마가 회사로 찾으러 오신거죠” 얼마나 그 매력에 빠져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말이었다.

촬영 현장을 그야말로 ‘종횡무진’ 누빈 그녀는 광고, 드라마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일에 정열을 쏟는 것이 일상적이 됐다.

그런 그녀는 "열심히 할 때 가장 재밌다. 진지할 때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재밌지 않나. 마찬가지다 열심히 할 때는 열심히 해야 가장 재밌다”라는 말로 자신의 열정을 설명했다.

특히, 설유진의 연출가로서의 세계도 이 한마디에 다 녹아있다. 재미있으려고 열심히 한다는 그녀에게서 열정으로 대변되는 ‘젊음’ 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녀의 열정도 당시 현장에서의 연령과 성별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들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녀의 열정은 끼얹어진 찬물에 성난 김을 뿜어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미국행을 결정했고 자신을 다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자신의 모양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설유진은 미국에 있을 당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동안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을 해봤다고 말했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장편 극본을 작업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녀는 스스로 당시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설유진은 ‘연극’을 만나게 된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회사를 하나 만드는데 여러 가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연찮게도 그 여러 가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다.(웃음) 그렇게 사무실을 함께 꾸리게 됐다. 조연출도 하고 기획도 했고 나중에는 김 전 장관이 무대감독도 지시하셔서 무대감독도 하게 됐다”라며 연극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때 지방공연장을 다니면서 무대 매커니즘을 배웠고 그러한 작업들을 계기로 그녀의 열정은 연극계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설유진의 구상 노트와 연극 '초인종'의 대본, 이를 통해 그녀의 창작에 대한 고뇌와 작품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양은미 기자)

이로 인한 모든 과정들은 설유진의 첫 작품 ‘씨름’을 탄생시키게 했다. 연극 ‘씨름’은 2014년 서울연극제 희곡공모전 ‘희곡아 솟아라’의 당선작이다.

당선의 사실보다 이에 대한 설유진의 설명이 매우 눈길을 끌었다. “33세까지 조금이라도 재능이 없으면 그만둬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을 세울 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두각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항상 직함 앞에 ‘조’를 붙이고 있었을 당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목표지만 나이에 목표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말 턱걸이로 2014년, 32세가 되서 희곡이 당선됐다”며 당시 희열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렇게 그녀를 구해준 ‘씨름’이라는 작품에 이어 2015년 설 연출은 ‘ARC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에 선정돼 연극 ‘초인종’을 첫 연출작으로 무대에 올리게 됐다.

▶[제 2막] 그녀의 세계가 그대로 담긴 작품 ‘초인종’

극본을 맡은 ‘씨름’보다 극본은 물론 연출까지 한 작품 ‘초인종’에 대한 애착은 그 이상이었다. 설유진은 “장면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쓰기 때문에 저는 작연출이 잘 맞는 것 같다. 제 대본을 가지고 다른 연출이 하시기 힘드실 것 같다. 대사가 아닌 행위 등 다른 것으로 분위기를 만들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런데 이게 숙제다 저 또한 다른 작가의 대본을 다뤄보고 싶고, 또 다른 연출이 해볼 수 있는 극본을 쓰는 것도 하고 싶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극 '초인종'은 무대 소품이나 조명 등을 최소화해 관객들이 등장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제공=극단 907)

이렇게 자신이 작연출을 하게된 작품에 대한 설유진의 열정은 굉장했다. 이와 관련 고뇌가 굉장히 깊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창작자가 집중해야 관객들도 집중할 수 있다”고 답변하며 자신의 열정이 필연적이라고 답했다.

때문에 연극 ‘초인종’에 대한 뒷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극 중의 여주인공이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의 대한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설유진은 “원래 성폭력이라는 사건은 초안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넣었다. 대사에 ‘그 흔한 얘기?’ 라는 것 때문에 극에 넣게 됐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녀는 “사실은 계속 잔잔하게 가고 싶었다. 딸과 아빠의 작은 갈등이 계속 점층되다가 폭발한 것으로 설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건이 필요했고 어떻게 보면 저랑 타협한 것이기 때문에 속상하다. 누군가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일 것이고 또 이 연극을 볼 수 있을텐데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 내야 하는 고통이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성폭행 장면을 구성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롭고 미안했다. 이 사건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렇게 작품 창작에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오로지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끝없이 고뇌해온 탓에 설유진의 연극 ‘초인종’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그녀는 자신이 창작에 집중했던 것처럼 관객들도 집중할 수 있길 바라는 요소를 극 중 많이 삽입했다면서 “최대한 밥상을 잘 차려서 등장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해주길 바랐다. ‘저들의 복수가 정당했다. 그로 인해 기뻐할 만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결국 가해자다’라고 관객들이 확 뒤집어주길 바랬다. 관객들이 정말 그렇게 잘 따라와줬다”며 관객들에 대한 믿음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설유진은 “관객을 숨막히게 해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암전 때 음악을 안 쓴 것도 같은 이유다. 극 중 대사 없이 침묵이 지켜질 때 관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답답해하길 바랐고 그 결과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모든 감정이 터질 때 함께 터질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이라며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느낄 감정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창작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연극 '초인종'의 한 장면, 연극 곳곳에 설유진의 연출력이 깃들여져있다. (사진제공=극단907)

그러나 그녀의 이런 의도로 배우들은 오히려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무대가 간결해진 이유도 배우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조명이 없다는 것도 배우들은 솔직히 매우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얼굴도 작아보이게 조명을 좀 써야 하는데(웃음) 그러지 않았으니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을 설득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 것도 있다. 그게 연출이 해야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매우 뚜렷했다. 그녀가 설명했듯 그녀의 연극에는 무대의 화려함도 조명도 음악도 최소화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듣고 나서야 그녀 스스로 작연출이 잘 맞다고 말한 것에 수긍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초인종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극 중 성폭행을 가한 남자가 부는 휘파람 곡은 슈베르트의 ‘송어’다. 그런데 관객들에게 전달이 제대로 안됐다. 사실은 '송어'가 굉장히 잔인한 노래다. 송어 낚시꾼이 송어를 잡으러 갔는데 물이 너무 맑아서 찌가 보이니까 송어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송어 낚시꾼이 일부러 흙탕물을 만들고 낚시를 한다. 그래서 극과 매우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배우에게 휘파람으로 '송어'를 불게 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자를 더럽히는 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극과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이 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이는 또 그 어느 곳 하나도 설 연출의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것으로 그만큼 자신의 작품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였다.

설유진은 “배우들은 힘들었겠지만 조금의 실수가 있어도 안됐다. 연극은 편집이 없다. 때문에 많은 것이 계산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가 실수를 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만한 장치를 만들어 주는게 연출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있다. 그래서 실수를 하더라도 관객들이 작품 의도를 아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연출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연출로서 최대한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든 공을 들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초인종’ 이었다.

▶[제 3막] '설유진'에 의한 설유진의 작품 세계

연출가 설유진 (사진=양은미 기자)

이렇게 성공적으로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고 나서도 설유진에게는 고민이 이어진다고 했다. “솔직히 이거 한 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참신하지만 이게 제 경향이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항상 저런 식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부담스럽다”며 그녀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장에서 배워왔지만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며 극작이나 연출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안 배운 사람 입장에서는 항상 불확실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항상 모르고 접근하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서 굉장히 힘들다.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이런 이유들이 더해져 오히려 설유진에게는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녀 또한 하고 싶은 일들이 많고 해야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뻔하게 느껴지는 설유진 작품이 될지, 그 것이 저만의 매력이 될지... 줄타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설유진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붙더라도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설유진이 하니까 재밌겠다. 이렇게 말이다. 설유진이니까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가 되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꿈은 그렇다”며 포부를 전했다.

특히 설유진은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한다. 기존과는 다른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여성성 자체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여성이 여성성에서 자유로워져야 남성들도 남성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래야 우리가 모두 평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악역도 여자 영웅도 여자 모든 여성 캐릭터가 스토리의 중심이 돼서 보편적인 여성성을 깨고 싶다. 여성이 단지 사회에 갇혀 있는 것 뿐이다 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런 그녀에게 세계적인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빌어 “새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으로 빈곤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기품을 찾게 한다”는 말로 응원을 대신하고 싶다.

그녀가 걸어왔던 열정의 시간들이 이를 토대로 만들어 낼 이야기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하고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채워주기를 기대해본다.

양은미 기자  yyyem12@media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