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노인국 기자]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중국에서 별세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암이 전이돼 일본과 중국 등을 오가며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머물며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건희 삼성그룹의 형으로 삼성家 장남이었던 이맹희 명예회장이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로부터 경영 일선에서 배제됐다. 이후 2012년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 관련 소송을 제기한 뒤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조명했다. <편집자 주>

‘비운의 황태자’에서 ‘야인’, ‘해외 운둔자’등 이맹희 명예회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명실상부 삼성의 황태자에서 비운의 주인공으로 바뀐 이맹희 CJ 명예회장은 1966년 5월 24일 발생한 이른바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사건 전, 이맹희 명예회장은 삼성 계열사에서 부사장, 전무, 상무 등 무려 17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삼성의 후계자로서 탄탄하게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의 특종보도로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음식의 단 맛을 내는 데 쓰이던 주원료가 이 사카린이다. 이를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에서 밀수했다는 점에서 받은 충격은 컸다. 이에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사카린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이때 이맹희 명예회장이 삼성을 이끌었다. 후에 이병철 회장은 이때의 일을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회고하며 “맹희에게 그룹경영을 맡기고 6개월도 안 돼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때의 일에 대해 이맹희 명예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부친이 이병철 회장의 작품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때 이맹희 명예회장이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삼성은 울산에 한국비료 공장을 지으면서 일본에게 420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얻는데, 정부가 지불보증을 섰다.

일본 미쓰이물산은 차관을 건설용 자재와 기계 등으로 대신 제공키로 하고 1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삼성에 주었다. 100만 달러를 문제없이 가져 올 방법이 궁색해졌다. 그래서 삼성은 이 돈으로 사카린 2259포대를 구입, 백색시멘트로 위장에 몰래 들여오다 부산세관에서 적발된 것이다.

이때, 사카린 외에 에어컨·냉장고·전화기·양변기·욕조 같은 당시로서는 사치품들을 함께 들여오다 맹비난을 받았다. 시중에 몰래 내다 팔면 몇 배나 남는 물품들이다. 이로 인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이병철 창업주는 1968년 복귀했다. 그러자 차남이었던 이창희씨가 아버지 경영복귀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삼성家 왕자의 난이다.

이창희씨가 부친 이병철 회장의 경영복귀 반대 이유로는 ▲부친의 복귀가 그룹의 미래에 이롭지 않다는 점과 ▲해외로 100만 달러를 밀반출하고 ▲현충사를 지을 때 경비를 부풀리는 것은 물론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이 탈세했다는 의혹 등을 내세웠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이병철 회장이 부정한 일으로 저질렀으니 기업에서 영원히 손을 떼게 해야 한다는 탄원서였다. 탄원서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자식을 부모를 고발하는 것에 대해 천륜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위와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이병철 회장은 이창희씨를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제거해 냈다. 문제는 이 때, 이맹희 명예회장이 같이 가담했느냐 하는 점은 논란이다. 탄원서를 청와대와 밀접한 사람들이 중간에서 만지게 된 것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이맹희와 고향친구 관계인 전두환·노태우가 합세해 공작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이에 대해 이맹희는 “사실이 아니다”고 회고록을 통해 반박했다. 하지만 2012년 재산 소송당시, 이건희 회장의 이맹희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서 “30년 전에 자신을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발했다가 가문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라며 이미 아버지께서는 “맹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고 못 박아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때의 일로 인해 그룹에서 완전히 배제된 이맹희는 ‘야인’같은 삶을 산다. 또, 그룹 후계권이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가고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는 제일제당을 손주, 이맹희의 아들인 지금의 CJ그룹 이재현 회장에게 상속했다.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던 이맹희 명예회장은 2012년,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분할 창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故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차명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몰래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4조원 상당의 주식과 배당금을 돌려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재산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한때 그룹의 승계자에서 부친으로부터 버림받고 한 많은 세월을 살았던 이맹희 명예회장의 굴곡진 인생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