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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금지 원칙과 적기조례
김형중 교수 | 승인2015.05.29 18:13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업적 가운데 ‘천송이 코트’ 규제철폐가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본 수많은 중국 시청자들이 전지현이 입은 의상과 잡화를 사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다. 그런데 결제 과정에서 공인인증서 설치라는 불편에 직면해 구매를 포기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천송이 코트 사례 이전에도 공인인증서에 대한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공인인증서 옹호론자들은 이 기술이 부인방지 기능을 제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인인증서를 썼기에 지금까지 금융거래 사고율이 거의 제로라고 말한다. 페이팔의 사고율이 0.3%라며 비교해 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어찌됐든 천송이 코트 이후 공인인증서 사용이 의무사항에서 선택사항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 때문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전남 영암군 산업단지에 설치된 전봇대가 대형 트레일러의 통행을 가로막는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런 것이 열악한 기업환경의 사례라는 당선인의 한 마디에 이틀 만에 전봇대가 옮겨진 적 있다. 천송이 코트는 산업단지 전봇대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전봇대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천송이 코트는 핀테크 산업과 맞물려 그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26일 다시 금융규제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세상에 재미있는 서비스가 있다. 내가 나임을 확인해 주는 소위 본인인증 서비스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지만 알려준다. 그런데 그것 하나 확인해 줄 때마다 50원 정도를 받는다. 전에는 주민등록번호 전체를 입력해야 본인인증을 해줬는데 지금은 생년월일만 입력해도 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보관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짜 본인을 확인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미 유출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성명과 생년월일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SNS에서도 이런 개인정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SNS에서 생일 축하는 늘 하는 일이다. 거기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 홍길동이 얼마든지 이순신 행세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서비스가 버젓이 살아있다.

실제로 본인 모르게 인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혹시 누가 자신 행세를 하는지 알려주는 서비스도 있다.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인증이 이루어질 때마다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 말이다. 당연히 무료가 아니다. 이처럼 인터넷 세상에서 본인인증이 쉽지 않은 데 실명확인이라는 이름의 원시적인 제도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참고로 구글에 가입할 때는 이런 실명확인 절차가 없다.

필자가 치킨을 주문하려고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시도해봤다. 인증 단계에서 필자는 일부러 생년월일을 틀리게 입력했다. 당연히 인증에 실패했다. 이처럼 틀리게 입력할 때마다 치킨 체인점은 대략 50원씩 지불해야 한다. 로봇을 시켜 하루에 수만 번 일부러 틀리게 입력하면 인증회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만 체인점은 앉아서 눈뜨고 코 베이는 격이다.

이 대목에서 치킨을 주문하는 데 꼭 고객에게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가 묻고 싶다. 회사는 그저 치킨 팔고 수금하면 그만이다. 치킨 팔다 보면 단골은 프리미엄 고객이 생긴다. 그 후 개인정보를 수집해도 늦지 않다. 사업이 먼저지 인증이 먼저는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이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손톱 밑 가시다.

치킨 팔고 돈을 떼일까 봐 걱정이 된다면 전화번호로 인증을 하면 된다. 누군가가 치킨을 2만 개 주문하면 당연히 전화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대량으로 주문해줘서 고맙다며 할인해 주겠다고 운을 떼고 주소 등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다. 소량주문의 경우 혹시 돈을 떼인다 해도 1% 이하의 수금 사고라면 10% 이상 되는 배달앱 수수료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어차피 본인인증 다 하는 배달앱을 써도 수금 사고는 일어난다.

규제를 만드는 쪽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동차로 인해 수많은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염려해 적기조례를 만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달려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자동차에는 운전수, 조수, 기수가 필요하고 그 중 마차에 탄 기수는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시내에서는 시속 3킬로미터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영국이 헛발질을 하고 있는 사이 독일, 프랑스, 미국이 자동차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적기조례 같은 과잉 규제가 산업발전을 얼마나 심하게 왜곡하고 저해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나쁜 사례다. 혹시 우리 주변에 적기조례 같은 걸림돌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형중 교수  khj-@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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